뉴미디어로 재편되는 세계 간의 접속:웹드라마 <드라마월드>를 중심으로1
This paper tries to diagnose the meaning of the 'world' today. I sought to analyze the web drama Dramworld and the cultural, technological conditions surrounding it. Dramaworld is a type of time-slip drama in which two worlds, "reality-America" and "virtual-Korea(drama)," overlap. Here I have raised three questions and tried to approach the meaning of the world today. First, what is 'Dramaworld'? Second, what is the meaning of the overlap between these two worlds, America(reality) and Korea(drama)? Finally,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new media, especially smartphone, and the world? In the technological conditions of new media, users resemble like Leibniz's monad. It looks like a self-enclosed being with "no windows." However, paradoxically, it results in a connection with the whole, not a separation from the world. The world today seems to have blurred the boundaries between the whole and part, universal and particular, and reality and virtual. Loss of standard usually leads to loss of stability. For that reason, the voices of far right-wing and fundamentalism are revitalized in some parts of the world. What they demand is a society/state without "windows," as a pseudo-monadic society/state, that has no relationship to the other. But that reactionary demand only causes the catastrophe rather than bringing stability. At the end of Dramaworld, the stage of the drama is switched over to the real world, not the virtual-drama world. The boundary between two worlds seems to have disappeared. It indicates that it is impossible to secure stability with a sense of the past.
Dramaworld, new media, the world, flat, monad
Ⅰ. 들어가며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감독의 <드라마월드>(Dramaworld, 2015) 는 한국, 중국, 미국이 최초로 공동 제작한 웹드라마다. 2015년 4월 글로 벌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비키(Viki)를 통해 첫 선을 보인 후, 한국어를 제 외한 39개 언어로 번역•제공되면서 드라마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2 참 고로 비키 이용자의 80%는 비(非)아시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 마월드>는 "최단기간 최다어 번역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가히 위 작품이 누린 인기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드라마월드>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16년 4월, 넷플릭스(Netflix) 서 비스를 통해서였다.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제11회 서울드라마어워즈 2016>에서 <드라마월드>는 '초청작'으로 '1년간 가장 큰 사랑을 받은 해외 드라마'(Most Popular Foreign Drama of the Year) 부문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시즌 1이 종료된 상태이다. 드라마 [End Page 35] 는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마치 이후 시즌 2의 제작을 예고하는 듯 한 장면으로 결말을 맺어 시청자들의 기대를 샀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듯 최근 <드라마월드>의 시즌 2가 제작 중이라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 기도 했다.
<드라마월드>는 한 편당 10–15분 안팎의 짧은 웹드라마로, 세계 간의 중첩을 다루는 일종의 타임슬립(time-slip)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 클레어는 한국드라마, <드라마월드> 내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K-드라 마"의 광팬이다. 그는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자신이 평소 심취하여 시청 해오던 한국드라마 <사랑의 맛>의 세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곳 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또 다른 세계, 즉 '드라마월드'였 다. 우연한 계기로 드라마월드에 진입한 클레어가 위험에 빠진 그 세계를 구출하는 것이 위 드라마의 큰 골자다.
여기서 본고가 다루려는 주제는 비단 <드라마월드>의 상세한 서사 분 석만이 아니다. 본고는 위 작품을 중심 텍스트로 삼되, 이를 둘러싼 문화 적, 기술적 조건들을 함께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세계'(world)라는 것이 지 닌 의미란 무엇인지를 진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드라마월드'의 의미를 따져볼 것이다. 위 작품이 연출 한 가상세계 '드라마월드'란 미국 제작진의 시선을 한 차례 경유하여 재현 된 한국드라마의 현현이겠다. 즉, 드라마월드란 패러디된 "K-드라마"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여기서는 <드라마월드>가 한국드라마를 패러디함 으로써 획득하는 효과 및 그것의 의미에 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어서 <드라마월드>에서 드러나는 세계(들) 간의 중첩의 의미를 분석 할 것이다. 현실/가상, 미국드라마/한국드라마, "진짜 인생"/스마트폰 세계 등등, 작품은 상반된 각각의 세계들을 재치 있게 포개어 영상으로 제시한 다. 드라마가 수행하는 이러한 세계 간의 중첩을 살피기 위해, 여기서는 토 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의 "평평한 세계"라는 개념을 참조하 고자 한다.3 [End Page 36]
마지막으로는 그러한 세계 간의 중첩을 매개하는 뉴미디어와, <드라마 월드>의 양식인 웹드라마 사이의 관계를 고찰해볼 것이다. 작품 내에서 클 레어와 드라마월드를 연결하는 매개란 바로 '스마트폰'이다. 한편, 웹드라 마의 대두 또한 공교롭게도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간과하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다른 뉴미디어보다 스마트폰의 기술 적•문화적 특징을 중심으로, 드라마 및 세계 간의 중첩에 관해 살펴볼 것 이다.
Ⅱ. 한국(드라마)의 또 다른 이름, '드라마월드'
먼저, '드라마월드'에 관해 알아보자. 전술했듯, <드라마월드>는 현실세 계와 가상세계-드라마월드 사이의 교차를 통해 구성된다. 정확하게 말하 면 'K-드라마월드'겠다. 본고에서는 통상적인 의미로 한국에서 제작된 드 라마를 가리킬 때는 '한국드라마,' 그리고 <드라마월드>에서처럼 패턴화, 법칙화, 패러디된 성격이 부각되는 한국드라마를 지시할 경우에는 'K-드 라마'라는 용어를 사용도록 하겠다. 드라마월드에는 그 세계의 "공식과 법 칙"이 기록된 '안내서'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한국드라마가 마치 법칙처럼 반복하는 클리셰(cliché)들이 기록되어있다. 먼저 간략한 등장인물의 소개 와 에피소드 요약을 살펴보자. [End Page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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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중심인물
이름 인물소개 클레어 던컨 (Claire Duncan) 대학생. 한국드라마 마니아. 아버지의 카페에서 일하던 중 사고 로 드라마월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박준(June Park) 드라마 <사랑의 맛>의 남자주인공. '리버틴' 레스토랑의 셰프. 미남, 재벌2세, 다재다능, 맥락 없는 팬서비스 차원의 샤워 장면 을 반복하는 등 한국드라마 남자주인공의 클리셰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서연(Seo-yeon) 수셰프. 드라마 <사랑의 맛>의 여자주인공. 어리숙하고 착하며 눈물이 많은, 여자주인공의 클리셰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세스(Seth) 웨이터. 드라마월드의 '조력자'로, 클레어에게 드라마월드 속 규 칙을 가르친다. 그러나 실상은 드라마 속에서 서연과 자신의 사 랑을 이루고자 교란을 일으켜온 반전의 인물이다. 가인(Ga-in) 매니저. 박준-서연과 함께 삼각관계를 이루는 클리셰적 악역이 다. 실상은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박준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세 스와 거래한 인물이며, 종국에는 세스에게 배신당한다. 도환(Do-hwan) 서연을 짝사랑하는 조연. 꽃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연이 힘들་때마다 위로를 주는 인물이다. -
②.
에피소드 [End Page 38]
에피소드 줄거리 1 미국 대학생 클레어는 한국드라마 <사랑의 맛>의 애청자다. 드라마를་보며 현실도피를 하던 그는 우연한 사고에 의해 '드라마월드' 속으로་들어가게 된다. 2 클레어는 자신처럼 현실세계에서 온 또 다른 '조력자' 세스에게 '드라마월་드 안내서'를 받아 이 세계의 "공식과 법칙"을 학습한다. 클레어는 드라마་월드를 구하고자 ་선 준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로 한다. 3 클레어는 세스에게 "조력자 공식"을 배우고, 조력자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준, 서연 두 주인공 사이의 연애를 성사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오히려 역효과만 낳게 되어, 서연은 준의 레스토랑에서་해고된다. 4 클레어는 줄거리를 수습하고 남녀 주인공을 다시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준에게 서연을 재고용하라고 설득한다. 한편, 그 시간에 세스་와 가인은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은밀하게 음모를 꾸미고 있다. 두་사람은 드라마월드의 공식을 어기고 세스는 서연을, 가인은 준을 차지하་고자 한다. 5 두 주인공의 화해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클레어는 드라마월드 캐릭་터의 "반사작용" 4을 떠올리며, 서연을 일부러 위기에 빠뜨린 뒤(레스토랑་에 서연을 몰아넣고 화재 사고를 일으킨다), 준이 서연을 구하게끔 작전་을 짠다. 하지만 오히려 준은 클레어를 구하다 다치고, 세스가 서연을 구་출한다. 6 준은 식당을 처분하여 세스에게 넘긴다. 드라마의 줄거리가 완전히 망가་지게 되자, 클레어는 줄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퇴장"(죽음)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옥상에서 투신하기 직전, '이게 누구에게 최선인 것이་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5 7 준은 죽은 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아 회장이 된다. 서연은 세스가 인수한་레스토랑에서 셰프로 고용된다. 클레어는 준에게 취중고백(준이 서연을་구하도록 자신이 일부러 레스토랑에 화재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한다. 서་연과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세스는, 함께 음모를 꾸་몄던 가인을 처치한다. 8 클레어는 가인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클레어는 가་인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은 준을 의심하여 그를 추궁한다. 준은 결백했་고, 그는 곧 클레어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 전에, 두 사람은 준의་아버지와 가인을 죽인 살인범을 찾기로 한다. 클레어는 준에게 그가 드라་마 속 인물임을 알린다. 9 준은 혼란을 겪지만 곧 자신이 드라마월드의 주인공임을 받아들인다. 한་편, 클레어와 준은 드라마월드 속 살인사건의 배후가 세스임을 눈치챈다.་그 시각 서연은 세스와 둘이 레스토랑에 있다. 세스는 무력을 이용해 서연་을 감금한다. 10 클레어와 준은 드라마 <사랑의 맛> 마지막 화가 끝나기 전에 서연의 상대་로 적합한 남자주인공이 키스할 수 있도록 레스토랑으로 달려간다. 클레་어, 준, 도환은 마침내 서연을 구한다. 준은 서연 대신,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클레어에게 하며, 서연은 도환과 키스한다. 각자의 사랑이 이루어지고་<사랑의 맛>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현실로 돌아온 클레어는 여느 때와 같་이 카페에서 일을 한다. 그러던 중 드라마 속 준이 갑자기 그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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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에서의 키스가 지닌 중요성을 설명하는 클레어
작품은 에피소드 3까지 K-드라마의 특징과 법칙을 연출하는 데 많은 대목을 할애한다. 클레어는 드라마에 지나치게 빠진 자신을 나무라는 아 버지에 맞서 다음과 같이 K-드라마를 옹호한다. "아빠, 드라마 속에선 인 생이 즐겁단 말이야. 누구나 예뻐질 수 있고 누구라도 진정한 사랑에 빠질 수 있어. 아무리 평범한 여자라도 남자주인공과 눈이 맞을 수 있고, 키스하 는 순간 해피엔딩이 이루어진다고." 클레어에게 K-드라마란 '예측 가능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구성된 현실도피의 매개물인 셈이다.5
통상적으로 예측 가능한, 다시 말해서 '뻔한 결말'로 치닫는 드라마는 저 평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히려 클레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K-드라 마를 사랑한다. 후반부에서, 자신이 드라마 속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사실 [End Page 40] 을 깨달은 준(에피소드 8)은 언젠가 클레어에게 "네가 사는 세계," 즉 '현실 세계'는 어떠하냐고 묻는다. 클레어는 "시궁창이야"(it sucks)라고 답하며, 구체적으로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아무도 몰라"라는 이유를 덧붙인다. 예측 가능하며, 평범한 여성 주인공이 구원을 얻고, 선한 인물은 보상을 받되 악 인들이 응징되는 K-드라마의 전형성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1차원적인 '평 평한(flat) 소망'을 곧잘 충족시킨다. 그러한 이유에서 미국인 클레어는 미 국드라마보다는 한국드라마에 열광한 것이다.
텔레비전 방송, 특히 지상파로 송출되는 방송은 대개가 '안정'과 '보수'를 추구하는데, 이는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의 오랜 지적처 럼 국가가 "주파수의 분배"(64)를 통제하는 데서 기인한다. 드라마도 예외 일 수는 없다. 대개의 텔레비전 시청은 가정이라는 '일상' 속에서 수행되 며, 영화-스크린에 비해 소비•향유되는 스펙트럼의 크기가 협소한 편이 다. 박노현은 그러한 이유로 "텔레비전 드라마는 정치경제학적으로 두루 안정적 형식과 보수적인 내용을 선호"(344–45)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공 중파에서 방영되는 한국드라마들이 다년간 선호했던 그러한 "안정적 형 식"의 반복은, 미국(인)이라는 타자의 시선 속에서 일종의 '드라마월 드' ― 일반적인 제작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안내서가 존재하는 듯 보이는 판타지적 세계 ― 로 현시되기에 이른다.
비록 <드라마월드>의 공동 제작자이자 주연(박준 역)인 션 리처드 (Sean Richard)는 한 인터뷰에서 "패러디는 아니었어요. […] 한류드라마 의 중심에 뭐가 있는지, 한류팬들은 뭘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 어요"6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실상 <드라마월드>는 극 전체가 한국 드라마에 대한 패러디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적으로 한국드라마의 클리셰 [End Page 41] 를 우스꽝스럽게 전면화하는 장면들뿐만 아니라, 선한 인물들이 반전을 통해 악한임이 밝혀진 인물을 물리치거나, '평범한 여자'7가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져 키스-해피엔딩에 이르는 본 드라마의 서사는 K-드라마의 "공식과 법칙"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세계로부터 외삽된 '미국인 주인공'이라는 예외가 존재한다. 또한 작품은 <사랑의 맛>이라는 기존의 로맨스에서, 살인범의 정체를 추리하고 추격하는 스릴러로, 종국에는 클레어, 준, 도환 일당이 악 당을 물리치고 서연을 구출하는 액션으로 장르가 전환되는 등의 변수가 기입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예외와 변수들은 형식적인 차원에서 K-드라마의 공식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일종의 "뒤틀린 플롯," 즉 드라마월드의 "제1장 네 번째 공식"에 복무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8 이는 곧 '미국드라마'인 <드라마월드>조차도 실상은 드라마월드, 다시 말 해서 'K-드라마'의 공식과 큰 차이가 없음을 의미한다.
즉, 서로 대비되는 것이라 믿었던 두 타자화된 세계조차 서사의 완결을 위해 요구되는 어떤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클레어와 준 사이에서 발생하는 '증여의 교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 온 미국인 클레어는 드라마월드에서 준을 만나 종국에는 생애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얻는다. '가상 세계'의 한국인 준은 외부세계로부터 [End Page 42] 온 클레어를 만나 진짜 세계-현실의 존재를 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위 치를 자각하는 경험을 얻는다. 둘은 동일한 증여를 교환하는 것처럼 보인 다. 외관상의 결과적 측면만 따졌을 때, 임마누엘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는 (위기 상태의) 제3세계와, (인 도적 개입을 수행하는) 제1세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통상적인 증여의 관계 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Ⅲ. 현실과 드라마월드, 플랫화하는 세계 간의 중첩
주지하다시피 <드라마월드>는 한국드라마를 주요 모티프로 삼은 작품 이다. 또한 한국•중국•미국이 공동 제작한 드라마이며, 작품에는 주연에 서 카메오에 이르기까지 실제 한국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유명 한국인 배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술했듯, 정작 드라마가 제작된 이후 약 1년 간 한국 거주자들은 <드라마월드>를 볼 수 없었다. 최초 웹드라마 <드라 마월드>가 발표된 웹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인 비키가 한국 지역에 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드라마월드>가 미국, 정확히는 미국(인)의 시선과 스타일을 통해 재현된 그들 식의 'K-드라마' 일지라도,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기란 어렵다. 이 작품은 '실제로' 미국드라마이기도 하며,9 동시에 미국드라마로서 전 세계에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미국드라마로서 한국드라마를 가상세계적 구현물로 다루며 타자화하 고 이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은, 특히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관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시될 소지를 지닌다. 코미디는 그 자체로 "이 슈"를 지닌다. 어떤 세계에서는 웃음으로 통용될 농담이, 다른 한편에게는 [End Page 43] "수치심"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Berlant and Ngai 234). 하지만 <드라마월드>는 그 문제에서 다소의 완충제를 확보하고 있는데, 그것은 많은 한국인들(배우뿐만 아니라,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비키를 통하거나, 또는 이를 경유하지 않고 다른 경로로 드라마를 접하고 호응한 시청자들 까지)의 실제적 참여가 이 작품의 핵심을 구성하는 까닭에서다. 타자로서 신화화되어 편견의 대상이 된 이들이 그것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더욱 해당 스테레오타입 속으로 스스로를 개입시키고 직접적인 발화를 수행할 때, 이는 다층적 맥락을 지닌 '농담'으로 승화된다.
특히 인종, 성적지향과 같은 정체성에 관한 편견에 근거한 농담들이 여 기에 해당한다. 예컨대,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코미디언인 시에라 캐토우 (Sierra Katow)는 한 스탠딩 코미디에서 다음과 같은 농담을 한 적이 있 다. "나는 다른 말을 못하고 오직 영어만 해요. 그런데 이상하죠, 중국 레 스토랑에 가면 그들은 내게 늘 중국어로 말해요. […] 그들은 저를 판단해 요. 그들의 말을 못하니까 제가 약간 덜 아시아인(little less-Asian)이라는 거예요. 그럼 저는 상처를 받고 자리를 뜹니다. 그리고 운전을 해서 17중 추돌사고를 만들어버리죠. 자, 이제 누가 진짜 아시아인이냐? 바로 나다!" 그는 동아시아인들의 민족주의와 더불어, 미국 내에서 동아시아인이 운전 을 못한다는 편견을 과장하여 희화화함으로써 그것을 유머로 전유해버린 다. <드라마월드> 또한 기본적으로 이러한 농담의 맥락 위에서 제작된 측 면이 있다.
농담에 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자. 일반적으로 특정 인종, 성 적지향, 종교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대개 남성,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제1세계인,' 개신교 등등, 소위 '보편자'로 가정된 이의 시선으로부터 주조 된다. 보편에 미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타자들은 이분법적 구별에 근거 하여 스테레오타입화 된 '평평한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가령, '특정 인종은 게으르고(반면 우리는 근면하다),' '특정 성적지향을 가진 이는 문란하며 (하지만 우리는 금욕적이다),' '특정 종교인들은 근본주의적 테러리스트다 [End Page 44] (그러나 우리는 세속화되었고 평화를 추구한다)'라는 관념이 그 예이다. 가 정된 보편의 위치 바깥에 있는 이들은 숭배 또는 혐오의 대상으로서 쉽게 타자화 된다.
물론 위 예시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인종주의적, 차별적 표현이다. 따 라서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관점에서 위와 같은 편견에 의거한 언사를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으로 통용 된다. 그러나 공식적인 차원에서 위와 같은 주장들이 표현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종, 성별, 성적지향, 종교 등등 사이의 위계와 차별이 잔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앞서 서술한 '농담'의 발화는 이 러한 차별과 '평평한 이미지'에 저항하려는 차원의 일환으로서 수행되기도 한다.
가령, 자신이 속한 준거집단이 '게으름,' '문란함,' '테러리즘' 등의 성격을 지니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대응이다. 위 속성은 기 실 어느 집단에서든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나는 특징이며, 심지어 인간은 개인의 차원에서조차 게으름/근면함, 문란함/금욕적, 테러리즘/평화주의 등의 양가적 속성을 동시에 잠재적으로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자 신의 스테레오타입화 된, 즉 평평한 이미지를 과장하여 내세우는 농담은 다양한 맥락을 발생시킨다. 여기서 풍자적으로 부각되는 지점이란 해당 집단에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가 아닌, 그 평평한 편견의 이미지를 만들고 확대•재생산하여 그들을 타자화 해온 권력(자)의 특권(privilege)이나 위 계인 까닭에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농담의 발화가 허용되는 위계가 전도되는 양상이 발 견되기도 한다.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은 "하위주 체(subaltern)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차례 경유한 끝에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자'라고 결론 내린다. 하위주체의 목소리는 가정된 보편 내 지는 공식적인 장에서 그 자체로 재현(representation)되지 않기 때문이다 (104). 그러나 위 농담의 수행에서는 그것이 뒤집어진다. 예컨대 앞서 살10 [End Page 45]
펴본 시에라 캐토우의 농담을 비아시아계 미국인, 특히 백인-남성이 말한 다고 생각해보자. 이때는 농담의 맥락이 완전히 달라지며, 정치적으로 옳 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윤리적 문제가 개입되는 까닭에 사회적 특권을 지닌 집단의 일원일수록 그는 타자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 거나 희화화하기 까다로워진다. 오히려 하위주체일수록 농담을 수행하는 데에 윤리적 제약과 범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사회적 특권을 지닌 주체일수록 그들은 (농담을) '말할 수 없는 자'가 된다.
<드라마월드>는 비록 미국드라마이며 미국인-백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사를 진행시키지만, 정작 K-드라마의 평평한 이미지를 가지고 희화화 하며 즐기는 몫은 대개 한국인(계) 배우에게 있다는 점에서 위 농담의 맥 락과 닮아 있다. 미국인 클레어는 K-드라마의 팬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드라마월드의 공식을 배워가며, 마침내 동화되어 입사(initiation)에 성공 하는 인물로 그려질 따름이다. 시에라 캐토우의 농담이 그랬듯, <드라마월 드>는 한국드라마와 미국드라마라는 이중의 대상을 동시에 풍자한다. 작 품은 드라마월드라는 가상세계를 통해 K-드라마의 스테레오타입을 유머 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와 동시에 극 전반을 사실상 작품 속에서 열거된 [End Page 46] K-드라마의 법칙에 부합하는 형태로 완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를 비웃고 있지만, 미국드라마 역시도 그 법칙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드라마월드>는 형식의 차원에서 지시한다.
<드라마월드>와 같은 작품의 출현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표현처럼, 어 느 정도는 '평평한 세계'라는 조건 하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한•중• 미의 국제적 공동 제작이나, 한국과 미국의 로케이션을 오가며, 각각의 세 계를 한 작품 속에서 포개는 등의 서사를 구현하고, 이러한 작품이 동시다 발적으로 세계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요인이란, IT기술의 발전 등에 힘입어 전 세계가 접속되고 공간적 제약이 붕괴되는 이른바 세계의 "플랫 화"11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오시노 타케시(押野武志)는 프리드먼을 차용한 논문 「플랫화하는 문 학」(フラット化する文學)에서 오늘날 일본문학에서의 '세계'라는 개념을 진단한 적이 있다. 현대로 올수록 일본에서 '세계'란 "이야기 설정의 약속 중 하나"에 불과한 개념이 되었다는 게 오시노의 주장이다. 이는 비단 문 학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 사회'에서 중간의 매개란 마치 사라 진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서는 오직 플랫화된 "원격지"(遠隔地) 이용자들 사이의 교류만 있을 뿐이다. 그는 일본 서브컬쳐계에서 '세계'를 2차 창작 의 설정으로 소비하는 '세계계'(セカイ系) 작품군을 언급하며, '세계'가 한 자 '世界'가 아닌 가타카나 ' セカイ'로 표기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세 계'라는 개념 자체가 지닌 의미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사실, 그리고 세계 자 체가 일종의 설정으로 평평해졌음을 의미한다(80). 즉, 세계란 더 이상 이 해해야 할 미지의 무엇(世界)이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동원되 고 불러올 수 있는 평평한 무엇(
セカイ)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월드>가 '미국-현실-예측불가능의 세계'와 '한국-가상-예측가 [End Page 47] 능의 세계,' 이 두 세계를 중첩시키는 데서도 플랫화의 논리는 적용될 수 있다. 원격의 두 세계는 플랫화되어 평평하고 단순화한 양상으로 직접 매 개된다. 단, 여기서 상기해야 할 점이 있다면, 비록 세계는 '평평'해 보이되 그것이 결코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프리드먼은 '아웃소싱,' '오프쇼어링'(off-shoring), '인포밍'(informing), '스테로이드' 등을 강조하 며 세계의 평평함을 주장한다. 그는 언젠가 인도를 다녀온 뒤 아내에게 "여보 내 생각에는 말이야. 지구는 평평해"(14)라고 말한다. 서구의 아웃소 싱 및 오프쇼어링의 무대였던 인도가 위탁 국가와 기업의 정보 및 기술력 을 수입하여 발전의 동력으로 삼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청/원 청의 구분에서 볼 수 있듯 여기에는 국가와 기업 간의 명확한 위계가 기입 되어있다. 또한 인도가 서구와 나란히 등치되어 평평한 세계로 호명되기 위한 전제란 우선적으로 서구-보편성의 시선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것이 다. 그 점에서 '평평한 세계'는 곧 그들 간의 위계가 말소된 '평등한 세계'와 는 무관하다.
<드라마월드>의 두 세계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앞서 '증여의 교환' 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각기 다른 세계에서 온 클레어와 준은 평등한 관 계 위에서 서로 선물을 교환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관계는 정말 평 등한 것이었을까? 여기서 두 인물의 교환이 진정 '증여'로 승인되기 위해서 는 필수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온 클레어의 시선을 매개해야만 한다는 점 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으로 드라마월드에 속한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 해보자. '현실 세계'의 클레어가 드라마월드에서 벌인 일을 단순히 구원으 로만 평가할 수 있는가? 드라마월드라는 세계의 기존 질서는 와해되었고, 그곳에는 새롭게 쓰여야 할 거대한 파열적 공백이 발생하게 되었다. 또한 일방적으로 파괴된 세계는 오직 드라마월드뿐이다. '해피엔딩'으로 봉합되 는 작품의 결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 인물, 그리고 두 세계가 서로 평평 한 위치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현실 세계'의 관점을 채택할 때에만 가능한 해석이다. '평평한 세계'와 '평등한 세계' 사 [End Page 48] 이에 통약불가능한 간극이 존재하듯, 두 인물 사이의 교환을 평등한 것으 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정체성에 관한 농담이 지닌 효과와 맥락을 상기해볼 수 있겠다. 농담은 마치 정체성 간 차별이 없는 것처럼 가장된 '평평함' 이면의 특권과 위계를 폭로하고, 하위주체성을 전유해 그들 사이의 발언권(력)의 차이를 현시했다. 결국 농담을 통한 폭로가 지향하는 바란 진정한 의미에서 정체 성 간의 '평평함,' 즉 평등에의 지향을 실현하는 것일 테다. <드라마월드> 또한 그렇게 독해해볼 수는 없을까? 분명 스마트폰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 실 세계와 가상 세계-드라마월드는 직접적으로 평평하게 연결된다. 하지 만 위에서 보았듯, 그것이 두 세계 그리고 두 세계에 속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증여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평한 세계"란 아마도 불가능의 영역일 것이다. 그럼에도 평평한 두 세 계 사이의 연결 이면에 숨은 비-평평한 균열과 위계를 패러디하는 것, 그 리고 이를 통해 기존의 보편/특수를 넘어 세계들을 포개고 접속시키는 것 이 <드라마월드>라는 농담의 효과라고 볼 수는 없을까?
Ⅳ.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와 모나드
여기서는 미디어의 측면에서 '세계'의 의미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드라마월드>에서 스마트폰은 핵심적인 미디어로 기능한다. 클레어 는 '현실-미국'에서 스마트폰을 매개로 <사랑의 맛>이라는 '가상-한국'을 시청한다. 또한 스마트폰은 클레어가 드라마월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는 타임슬립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현실세계에서, 스마트폰은 <드라마월 드>의 시청자들이 높은 확률로 이용하게 될 미디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웹 드라마로서의 <드라마월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웹드라마라는 형식과 더불어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웹드라마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간략히 정의된다. 첫째, 러닝타임 [End Page 49] 이 짧다. 둘째, 언제 어디서든 재생이 가능하다. 셋째, 기존 드라마의 제작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김은성, 강지영 74–75). 이는 <드라마월드>의 특 징과도 정확히 부합한다. 웹드라마 <드라마월드>가 다른 기존의 드라마와 가장 변별되는 지점은 바로 짧은 러닝타임이다. 모바일 미디어를 염두에 두어 제작되는 웹드라마의 러닝타임은 기존의 드라마에 비해 비교적 짧 다. 이는 드라마가 상영되는 스크린의 크기나 드라마가 서비스되는 공간 의 인터페이스, 즉 미디어의 차이에 오는 특징이다.
여기서 잠시, 영상매체의 기술발전과 대중화의 양상에 관해 개괄해보 자. 연극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드라마로, 그리고 웹드라마로, 뉴미디어의 출현은 거듭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의 개발 및 대중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는 어떤 흐름이 발견된다. 바로 '최소화'(minimalization)다. 무대에서 극 장의 스크린으로, 스크린에서 TV브라운관으로, TV에서 PC모니터 또는 스 마트폰 액정으로 옮겨가는 궤적에서 보듯,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미디어의 크기, 규모, 상영 공간 등은 최소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동시에 미디 어-콘텐츠의 최소화는 곧 수용자의 미시적 일상과 더욱 밀접해지는 경향 과 연동된다.
그렇다면 이 최소화하는 극장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서구의 지적 전통 에서 모색해본다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의 '모나드'(monad)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사이버공간 이론가들이 가장 많이 참조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절대공간-실체주의(substantialism) 와 비교되어, 관계주의(relationalism)적 관점으로 공간을 사유하는 통찰 로서 인용되곤 한다(Bryant 138–47). 라이프니츠는 세계를 모나드로 구성 된 것으로 보았다. 모나드란 "만물의 요소"로서, 외부 환경으로 열린 "창 문"이 없는, 각자의 "내적 원칙"(internal principle)이 지배하는 자기 폐쇄 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원자"적 실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다(Leibniz 251–53). [End Page 50]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Monadology)은 현대의 양자론뿐만 아니라 사 이버공간에의 인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이버공간에 몰입하는 행위란 마 치 외부 현실을 매개하는 "창문" 없이 전체로서의 세계-우주를 반영하는 모나드로 귀속되는 양상과 유사하다. 요컨대, 각각의 사용자들은 외부 현 실과 통하지 않는 모나드적 존재가 될수록, 역설적으로 전체 세계와 접속 한다. 가령, 슬라보예 지젝(Slavoj Ž iž ek)이 예시한 바 있듯, 사용자가 홀 로 PC모니터에만 반응하며, '가상적 시뮬라크라'만을 접하게 될수록 그는 이른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으로 대표되는 "지구적 네트워 크"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100). 모나드를 최소화하는 극장의 종착지로 서 유비한 것은 그 까닭에서다. 최소화된 규모의 극장이라 할 수 있는 스 마트폰 스크린을 통해 사용자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 및 범위로 서의 세계 전체와 접속을 구현한다. 그 점에서 사이버공간은 그 자체가 모 나드의 원리를 구현하는 세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이버공간의 세계는 '가상 세계'로서 곧잘 평가절하되곤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랑의 맛>을 보는 데만 빠져있는 클레어에게 아버지가 남긴 쪽지도 다음과 같았다. "폰 금지! 드라마 금지! 진짜 인생을 살자! 아 빠가."
클레어에게 그의 아버지가 남긴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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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의 아버지는 스마트폰-드라마를 "진짜 인생"의 상대항에 위치시 킨다. 그는 스마트폰을 문제적 미디어로 인식한다. 그것이 클레어로 하여 금 "진짜 인생"을 회피하도록 조장하며, 스스로를 '허구의 세계'-'가상 세 계'-'가짜 인생' 속으로 귀속시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라 는 뉴미디어는 이용자가 누구든, 그가 어디에 위치해 있든, "진짜 인생"으 로부터 이용자를 이접(disjunction)시켜 그를 모나드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 속으로 몰아넣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가상 세계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실체로서의 참여자/이용자들을 단순히 '가짜'에 불과하다고 단정 할 수 있을까?
전통사회와 열린사회. 열린사회일수록 각 개인들 간의 친교, 접촉이 중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디트마르 슈타이너(Dietmar Steiner), 게오르크 쇨함머(Georg Schö llhammer), 게오르크 아이힝어(Georg Eichinger), 크리스티안 크네 츨(Christian Knechtl)이 『지평선 위 수도의 탄생』(Geburt einer Hauptstadt am Horizont )12(재인용. Kittler 142)에서 도식화한 "전통사 회"와 "열린사회" 간의 비교를 떠올려보자.
권위적 구조의 전통사회에 비해, 후자는 뉴미디어가 구현하는 사회의 상과 유사해 보인다. 네트워크가 구현하는 상호연결/접속이 상이한 카테 고리와 집단에 속한 다양한 개인들을 매개하는 양상과 위 열린사회의 도 식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두 사회 [End Page 52] 모두 각각의 분산된 개인들을 접합하는 어떤 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도시는 미디어다」("The City Is a Medium")에서 도시의 매체적 성격에 관해 분석한 바 있다. 도시 중에 서도 수도(capital)란 그 명칭의 유래처럼 대개 '머리'의 기능을 도맡는다.13
키틀러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담론의 체계를 분석하는 과정에 서, 시대와 목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의 표상이 군주제에 사 로잡혀 있"는 까닭에 "정치적 사유와 분석"에서 "우리는 여전히 왕의 머리 를 자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대목을 인용한다(Foucault 88–89; 재인용. Kittler 138). 그는 "왕의 머리"로부터 (그리스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머리' 인 수도를 유비한다. 즉, 도시 간의 접속에는 위계가 기입된다. 해당 시대 의 첨단에 위치한 모더니티를 머리로 삼는 수도의 공간적 감각에 의해 "사 유와 분석"이 수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 간의 접속에서도 동일 하게 일어난다.
클레어는 '현실 세계'에서의 자신은 조연에 불과한 존재라고 말한다. 스 스로를 조연으로 평가하는 것은 해당 세계의 '주연'에 준하는 상을 전제했 을 때야 가능하다. 즉, 클레어는 '현실 세계'의 '머리'가 발신하는 어떤 "사 유와 분석"의 틀에 의거하여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것이다. 클레어는 아버 지가 말하는 "진짜 인생"을 되도록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와 는 상반되는, "누구나 예뻐질 수 있고 누구라도 진정한 사랑에 빠질 수 있" 는 K-드라마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한 것은 그 까닭에서다. 그러나 클레어 처럼 '현실 세계'보다 드라마라는 '가상 세계'에 자기 자아의 도피처를 마련 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히려 그럴수록 자신의 사유, 분석, 감각, 행동원인 등을 '현실 세계'의 문법에 귀속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심지어 클레어가 드라마월드로 입장한 이후에도, 그의 "사유와 분석"을 [End Page 53]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현실 세계'였다. 그는 자신이 위치한 드라마월드를 자신의 현실로 여기지 않았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을 드라마월드라는 세계의 구성원으로 여기지 않았다. 클레어가 하고자 한 일은 본인이 '현실 세계'에서 즐겨보던 드라마 <사랑의 맛>의 이상적인 결말을 연출하는 것 에 불과했으며, 또한 그는 여차하면 <사랑의 맛>의 줄거리를 위해 "퇴장" 할 채비까지 하고 있었다(에피소드 6). 그것은 클레어가 드라마월드를 또 하나의 현실이 아니라 단지 <사랑의 맛>의 무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와 드라마월드 사이에 이처럼 위계가 기입되어있듯, 전통사 회와 열린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통사회에서는 분산된 개인을 접합 하는 최고 정점에 머리로서의 수도가 위치한다. 하지만 열린사회에서 최 고 정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마 프리드먼이라면 열린사회로 이행할수 록 해당 사회가 '평평해지고 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전통사회의 도식과 달리, 열린사회는 '머리'의 위계를 거치지 않은 채 개인 간의 접속/상호작 용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틀러는 수도란 사라지지 않고 다 만, "규칙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한다"고 주장한다. 수도는 그 자체로 "공 명"하기 마련이며, 오히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도시 간 네트워크'끼리 의 중첩(overlap)이다(Kittler 142). 즉, 하나의 수도-머리로부터 유기체적 관계를 파생했던 것이 전통사회라면, 열린사회란 다만 개체들 간의 관계 가 친교를 중심으로 무수하게 중첩되는 공간인 것이다.
라이프니츠가 고안했던 모나드로서의 세계는 전통사회보다는 열린사 회의 구조와 더 유사해 보인다. 라이프니츠는 하나의 마을을 어디서 바라 보는가에 따라 상이한 관점들이 무한대로 발생할 수 있듯, 모나드도 그러 하다고 주장한다(263). 여기에는 수많은 중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라이프니츠의 세계관은 열린사회의 그것보다 일목요연하다. 이러한 "우연성들"(contingencies)이 상호연결되어 향하는 지점이란 바로, "필수 적 물질"(necessary substance)이자 우주 내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 즉 신이기 때문이다(Leibniz 259). [End Page 54]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마샬 맥루언(Marshall McLuhan)의 명제 를 뒤집은 모양으로, 새로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출현 및 확장은 그것 의 형식과 유사한 인간상을 축조하고 있다. 점차 외부와 통하는 "창문"이 없는 공간으로 향하는 현대인의 표상은 모나드적 실체에 가까워지고 있 다. 단적으로 한국의 상황을 보자.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 의 1인 가구 수는 85만 4천여 가구이며, 이는 전체의 24.4%였다. 그들의 대다수는 단독•다가구주택에서 살았다. 2012년 기준, 서울의 1인 가구 중 단독•다가구주택 거주 비율은 38%로, 이는 아파트(27%)보다 10% 이상 높았다(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1인 가구 수, 단독•다가구주택에 거주하 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큐브'와 같은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소한의 인원과 거주하는 세대는 꾸준히 증가 중이며, 이는 어느덧 서울 에 거주하는 청년 세대의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는 중이다. 하 지만 세계와 사회적 네트워크를 분리하고 파편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위 경향은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을 낳고 있다. 다만, 여기서의 세계는 오시노 가 지적했듯 '世界'보다는 ' セカイ'에 가까운 것이며, 사회적 네트워크는 소 셜미디어를 통해 개개인의 상이한 타임라인(timeline)을 근간으로 형성된 다는 차이가 있다. 이때 뉴미디어인 스마트폰은 그러한 개개인을 상호연 결하는 "필수적 물질"의 도구이자 대리자로서 기능한다.
클레어는 스마트폰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는 <사 랑의 맛>의 해피엔딩을 이끌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난관에 봉착하 고 "퇴장"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종국에 그는 드라마월드를 구 한다. 비단 '현실 세계'에서 온 조력자에 머무는 것이 아닌, 드라마월드의 '주인공'으로서 클레어가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클레어는 기존의 "사유와 분석"의 틀을 생산해온 어떤 '머리'를 부분적으로나마 잘라낸 것처 럼 보인다.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된 클레어는 재차 '현실 세계'로 복귀한 다. 가상 세계-드라마월드에서의 접속과 경험들은 마치 꿈처럼 잊히는 듯 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영원히 가상의 인물로 남으리라 믿었던 준 [End Page 55] 이 첩보드라마 주인공의 모습을 한 채 클레어의 "진짜 인생," 즉 '현실 세 계'로 찾아온 것이다. 이제 과연 어디가 현실 세계이며 어디가 드라마월드 인 것인가? 그렇다면 이 마지막 장면은 진정한 의미에서 두 세계 사이의 평평한 중첩이 발생했음을 암시하는 것인가?
모나드의 원리가 자기폐쇄적, 우연적 성격을 지님에도 안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가 전체-세계를 전제할 때 발생 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열린사회의 도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중첩은 마치 그 사회가 평평한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다. 그러나 진정으로 평평한 사회가 된다면, 그 결과 무엇이 중심이고 무엇이 주변인지, 무엇이 전체이 고 무엇이 부분인지, 무엇이 "진짜 인생"이고 무엇이 '가상 세계'인지 구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과연 그 세계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안정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준의 등장에 클레어가 놀란 것은 여전히 그가 자신의 현실적 "사유와 분석"의 감각과 틀을 생산하는 '머리'를 완벽히 잘라내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러한 '머리'의 존재를 초월론적으로 가정하 지 않는다면, 도대체 '세계'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전통사회식의 것은 세계가 동시적으로 접속하는 오늘날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 그보다 더 평평한 상태로 이행된 열린사회에서는 수도, 즉 '머리' 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그것은 존재한다. 공통의 감각, 윤리, 사유의 틀을 발생시키는 어떤 보편(성)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서, 개개인 의 접속 다발을 한데 묶는 '사회'라는 개념을 상상하기란 난망하기 때문이 다. 사회의 열린 정도가 확대될수록 사회를 응집하는 데에 이전의 위계, 특 권, 위상 등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머리'로서의 보편(성)이다. <드라마월드>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짧 고 가벼운 분위기의 웹드라마이다. 하지만 뉴미디어로 매개된 모나드적 실체가 되어가는 현대인들에게, <드라마월드>가 세계 간의 중첩을 연출함 으로써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결코 단순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End Page 56]
Ⅴ. 나가며
프리드먼의 주장처럼 오늘날의 세계가 평평함에 도달한 것이라 확답하 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개인, 사회, 국민국가 등의 여러 차원에서 이 경계 는 흐려지고 있으며, 다양한 형식상의 중첩이 발생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 실이다. 한편, 오늘날 우리는 세계 이곳저곳에서 극우파, 근본주의 세력 등 의 실천과 위력이 다시금 부상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 가 향하는 바는 의사(pseudo) 모나드의 형태와 유사해 보인다. 그들은 타 자를 들이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창문 없는' 자기폐쇄적 국가 및 사 회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전체 세계로의 접속과는 전연 무관한 방향성을 띈다. 그것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과거의 위계와 기 준을 다시금 호출하여 어떤 안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반동적 제스처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말하는 소위 "좋았던 옛 시절"(good old days)로 온전히 돌아가기란 가능한가?
물론 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간 이상화해온 '가상 세계'의 현실성을 파악하게 된 클레어와, 그간 미지의 영역에 불과했던 '현실 세계'의 존재를 자각하게 된 준이 그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한편, 우리 는 '인도적 개입' 등과 같은 미명으로 수행된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의 증 여의 교환이 남긴 부산물과 잉여들이 점차 가시화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난민, 테러, 전쟁이 출현하는 무대는 이제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월드>의 끝에서 클레어와 준이 속한 두 세계 간의 경계가 흐려져 양자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던 것처럼.
뉴미디어는 그러한 세계 사이를 접속하고 재편하는 데 일정 기능을 하 고 있다. 여기서 잠깐 맥루언을 언급하고 싶다. 그는 이용자의 정세도와 참여도에 따라 "뜨거운 미디어"와 "차가운 미디어"를 구분한다. 정세도가 높고 이용자의 참여도가 낮을수록 '뜨거운 미디어'이며, 그와 반대라면 차 가운 미디어임을 의미한다. 예컨대, 맥루언 시대에 영화는 뜨거운 미디어 [End Page 57] 였고, 텔레비전은 차가운 미디어였다. 전자는 스크린이 연출하는 "고밀도" 의 시각성을 확보하고 있으나 후자는 그에 비해 부실환 화소들로 이루어 진 "저밀도"의 시각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영화보다는 텔레비 전을 볼 때 대상을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참여와 개입을 수행해야 했다(56– 57). 키틀러는 맥루언의 통찰에 일정 공감하면서도, 그가 위와 같은 구분 을 미디어의 "본질적인 차이"이자 속성으로 파악하는 데는 가차 없이 비판 한다. 그는 맥루언이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라는 "변수"를 간과했다고 지 적한다(키틀러 338). 실제로 맥루언 식의 '정세도'에 따른 미디어의 구분 은, 오늘날 HD 텔레비전의 출현에 의해 오히려 역전된다. 극장의 스크린 보다 텔레비전 브라운관이 더 "고밀도"의 시각성을 제공한 지는 꽤 오래된 일이다.
그렇다면 본고에서 줄곧 논의한 스마트폰은 과연 어떤 속성의 미디어인 가? 한동안 웹미디어는 그 어떤 미디어보다 이용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이른바 가장 '차가운 미디어'처럼 보였다. 이용자들은 전문가와 아마추어 의 경계를 넘어, 웹에 접속하여 그들 나름의 콘텐츠를 생산•소비해왔다. 웹드라마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고안되어 대중화된 양식 중 하나이다. 하지만 키틀러의 비판에서 알 수 있듯, 웹미디어는 '차가운 미디어'의 속성 만을 지니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지나치게 뜨겁다. 가령, 최근 스 마트폰의 기술은 '고밀도의 정세도'를 구현해 이용자들의 "단일한 감각"을 발생시키는 데도 성공하고 있다. 또한 웹드라마는 웹이라는 장에서 경쟁 하는 까닭에 필연적으로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를 의식하게 된 다.14 웹드라마는 짧고, 빠르며, '평평하게' 클리셰화된 세계를 전달하여 이 [End Page 58] 용자들의 주목을 얻어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공백, 데이터의 해석, 참여 등등의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점차 협소해지고 있는 것이다.
맥루언은 일찍이 '차가움(예컨대 냉전)'과 '뜨거움(예컨대 폭탄)'이라는 양자의 위협을 제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문화적 전략"으 로 "유머와 놀이의 정신"을 언급한 바 있다(68). 그것은 키틀러가 꼬집은 테크놀로지라는 변수와는 무관한 보편적 진실일 것이다. <드라마월드>는 '평평한 세계'의 산물이며, 작품 자체도 현실/가상 세계의 표상을 평평한 양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엄밀하게는,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타 자로서 호출되는 각각의 세계-대상이 지닌 평평한 이미지를 극단으로 밀 어붙여 극화해냈다. <드라마월드>는 '평평한 세계'의 이중적 측면(보편과 특수)이 지닌 균열과 위계를 패러디하여 이를 전유하는 데 비교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어쩌면, 너무 많은 참여(차가움)와 지나 친 평평함(뜨거움)을 동시에 자신의 속성으로 삼는 뉴미디어가 맥루언의 전언에 응답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편, 극우주의, 근본주의, 테러리즘, 전쟁 등등, 맥루언 시대의 '차가움' 과 '뜨거움' 사이의 위협은 이름만 조금 바뀐 채 여전히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양자의 위협을 제어하고, 진정한 세계 간의 접속을 구현해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클레어가 그랬듯, 관점을 전환하는 일, 푸 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거 세계의 '머리'를 잘라내는 일이 선행되어야겠 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전술했듯, 수많은 네트워크의 중첩에 가려 드러나지 않은, 또는 아직 도래 하지 않은 새로운 '머리'를 창안하기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보편 성을 사유할 때다. 조건은 이미 마련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리드먼의 말처럼 "세계는 평평"하기 때문이다. [End Page 59]
Soohwan KANG is in his doctoral program at Inha University, majoring in Koreanology. He is a lecturer at Inha and his research interests have focused on media theories and cultural studies. He is the author of the e-book, Netflix, A Theater of New Media Era (2017). xysnp@hotmail.com
Works Cited
Footnotes
1. 이 논문은 2007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07-361-AM0013).
2. 한국에서 비키 사이트에 접속한 이용자들은 콘텐츠 감상이 허가되지 않는다. 한국어 번역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은 것은 그 까닭에서다.
3. '평평한 세계'에 관해서는 다음 자료를 참조하라. 토머스 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 김 상철, 이윤섭 옮김, 창해, 2005.
4. 드라마월드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특정 행동을 하면 자동으로 특정 반응을 하게 된다. 예컨 대 남자인물은 조연이라도 기절하는 여자를 구하게 돼 있으며, 사고를 당한 뒤 처음 본 이 성과 사랑에 빠지게 설정되어 있고, 심지어 위급한 상황에라도 노래방 무대가 등장하면 인 물들은 돌연 노래를 하게 되어 있다. 드라마월드 안내서에서는 이를 "무의식적인 반사 작 용"이라고 부른다.
5. 드라마월드 규칙이 적힌 책에서 '퇴장'을 다룬 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조력자가 드 라마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도중하차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죽음을 통해 퇴장 할 수 있다. […] 현실세계와는 달리 드라마월드에서는 죽음이 일시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 다. 단, 주요 인물들이 득을 봐야 한다." 클레어는 자신이 죽으면 준과 서연이 장례식에서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퇴장'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는 자살 직전, 문 득 준의 아버지가 드라마 도중 의문의 자살을 한 것을 떠올린다. 준의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누군가가 "득"을 얻었음을 깨닫고, 클레어는 이를 밝히기 위해 퇴장을 철회한다.
6. 리처드의 위 인터뷰는 자신들이 한국드라마의 패러디보다는 궁극적으로 "스토리"에 더욱 집중하여 드라마를 제작했음을 밝히려는 의도였다. Cf. 고승희. 「'드라마월드' 션 리차드 "'한드' 법칙 50개로 정리…놀리고 조롱해선 안 된다고 생각"」. 『해럴드경제』 2016. 9. 1, 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0901000134.
7. 클레어는 이따금씩 "나는 내 인생에서조차 주인공이 아닌 걸"이라며 자조한다. 하지만 그러 한 이유로 그는 "조력자"로도, 동시에 K-드라마의 여자주인공으로도 적격이었다.
8. 드라마월드 안내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제1장. K-드라마의 공식 1) 모든 드라마는 진 정한 사랑의 키스로 끝난다. 진정한 사랑의 키스란 남녀 주인공의 키스를 말한다. 2) 남자 주인공은 네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춰야 한다. 자신감, 외모, 약간의 오만함을 갖추되, 여자주 인공을 우선시하는 신사여야 한다. 언제나 그녀를 1순위로 둔다. 3) 남자주인공의 샤워 신 은 필수다. 4) 온갖 뒤틀린 플롯이 등장한다. 훼방꾼과 장애물이 많을수록 진정한 사랑이 보장된다. 5) 진정한 사랑이 이뤄지면 드라마가 초기화된다. 캐릭터의 기억이 다음 작품을 위해 깨끗하게 지워지고 두 주인공은 다음 드라마에서 새로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6) 마지막 회까지 남녀 주인공이 키스에 성공하지 못해 진정한 사랑에 실패 할 경우 드라마월드는 사라진다." 위 내용은 에피소드 2에서 소개된다(필자 강조).
9. 전술했듯, 서울 <제11회 서울드라마어워즈 2016>에서 <드라마월드>가 수상한 부문은 '1년 간 가장 큰 사랑을 받은 해외 드라마'였다.
10. "반사작용"의 법칙상 드라마월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인물은 그 직후 처음 본 인물을 무 조건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극중 카메오로 출연하는 최시원은 드라마월드 캐릭터의 "반사 작용"을 연기하며,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를 희화화한다.
11. 프리드먼의 저서 The World Is Flat: A Brief History of the Twenty-First Century 는 일 본어판에서 『플랫화하는 세계』(フラット化する世界)라는 표제로 출간된다. Cf. トーマ ス• フリードマン. フラット化する世界. 日本経済新聞社, 2006.
12. Steiner, Dietmar, et al. Geburt einer Hauptstadt am Horizont . BuchQuadrat, 1988.
13. 주지하듯, '수도'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유래한다. 당시 그리스는 국가를 유기체로 서 인간의 신체에 비유했고, 이때 수도는 머리를 의미했다. 수도는 머리로서 해당 사회의 최고 대표자에 의해 통치되었다(Kittler 138).
14. Cf. Dovey. 주목경제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이 성패의 주요변수가 된 경제를 지칭한다.ᠨ웹 내에서 주목경제가 대두된 데는 넘쳐나는 데이터, 사용자의 이용 패턴을 데이터화하여 검색결과를 정리하여 제공하는 웹 인터페이스의 도입 등의 요인 때문도 있으나, 가장 핵심 적인 것은 바로 수익구조이다. 웹드라마의 가장 큰 수익구조는 광고 등이며, 이는 이용자 들의 주목에 절대적으로 기대야만 한다.